20살 대학 입학 하자마자 시작한 미식축구.
25살이 된 지금 거의 6년이 다 되어간다.
오늘은 대학미식축구 선수로 뛴 5년, 그동안 어땠는지 돌아보는 시간.
처음 입부할 때 과 동기 친구랑 같이 입부를 했다.
중학교때 잠깐 플래그 풋볼을 하기도 했었고
안타깝지만 운동은 하고 싶은데 축구를 못해서 차선책으로 택했다.
축구를 잘하는 것보다 그냥 새로운 운동을 파자는 마인드.
적당히 잘할 바에 하나 잡아서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입부했다.
사실 처음 입부할때 나는 참 초라했다.
미식축구란 운동이 격렬하고 터프한 이미지가 있어서 대개 운동을 좋아하거나 체격이 좋은 친구들이 들어오곤 하지만
나는 그런 케이스는 아니었고, 그냥 그런 이미지가 멋있어 보여서,
달리기 하나는 자신이 있어서 그냥 지원했다.
처음에는 피아노 동아리랑 같이 해서 훈련에 자주 참석하지 못했다.
지나고 나서야 안 사실이지만 당시 19년도엔 우리학교가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던 때였다.
서울리그를 우승하고 전국대회에 준우승을 했으니
고참이 되고 많이 뛰면서 얼마나 그때가 좋은 기회였는지를 늦게나마 깨달았지만
이미 좋은 시간은 끝이 나고 없었다.
있을 때 잘하자. 사소한 거라도 소중히 여기자(그 당시 나에겐 미식축구가 1순위가 아니었으므로).
19년도 여름 합숙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의 부족한 신체능력과 사회성으로 인해 1학년은 별 볼 일 없이 지나갔다.
어이없는 실수들로 선배들의 탄식만 자아낸 그런 폐급 플레이어였다.
그런 나를 아끼고 보듬어준 선배님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나는 나같은 후배가 나오지 않도록 1학년들에게 우열을 가리지 않고 잘 알려주고 잘 챙겨준다.
20년도에는 코로나여서 시즌이 취소되었다.
나 또한 학업으로 매우 바빠서 제대로 훈련에 나가지 못했다.
그러나 뒷풀이 등은 꼭꼭 참석하여 친목을 도모하였다.
특히 19학번 동기들과 쌓은 추억은 둘도 없는 소중한 시간으로 남게 되었다.
21년도에는 본격적으로 제대로 운동하기 시작한 때였다.
나는 체력이 문제라고 생각해서 지구력이나 기를 겸 자전거를 취미로 시작하기도 했다.
문제는 자전거에 너무 빠져버리는 바람에 미식축구에 앞서 자전거를 타는 그런 일이 발생하였다.
그래도 훈련에 열심히 참여하고 피치 못한 사정 한 두 번을 제외하면 모든 훈련과 경기에 참여하며 기여하였다.
21년도는 여러모로 참 힘든 시기였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 운동장 출입을 막아 훈련을 한강 공원에서 진행하였는데 매 훈련마다 그렇게 이동하는게 정말 힘든 일이었다.
하나 재밌는건 나는 자전거 타는것에 빠져있던 터라 매일 한강 공원으로 자전거를 한바퀴 타고 오곤 해서 한강공원으로 훈련하러 가는게 그닥 힘들지 않았다 ㅋㅋ 다른 동아리 부원들은 정말 힘들었을것 같다.
더군다나 코로나로 인해 시즌이 1달이나 늦게 시작하여 전국대회 준비를 할때는
크리스마스, 새해를 맞이하는 극한의 추위에도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한강공원에서 얼어붙은 몸으로 운동했는데 그때만큼은 정말 힘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했나 싶은데, 그 추위에도 나는 자전거 타고 가는건 재밌었다는게 얼마나 자전거에 미쳐있었는지 알만한 대목이다 ㅋㅋ
참 아쉬운건 자전거가 그닥 미식축구에 도움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자전거에서 얻을 수 있는 심폐지구력은 달릴때 필요한 심폐지구력과는 다르며
특히 미식축구를 할때 사용되는 심폐지구력은 또 다른거 같다.
달리기가 꾸준한 근육의 사용이 필요하다면 자전거는 힘들어서 막 밟아도 정해진 궤적을 따라 페달을 밟아서 약한 강도의 근육사용이 더 오래 지속되어야 하는 그런 지구력, 미식축구는 꾸준한 근육의 사용 보다는 폭발적인 근육의 사용과 약 20초간의 휴식, 이 과정의 지속적인 반복이다. 세 가지 종류의 운동에 요구되는 지구력은 명확히 다르다.
지나고 보면 21년도때도 나는 달리기만 빨랐지 뭐 잘하는게 없었다.
손도 나빠서 주전 리시버라지만 캐치 성공률도 그닥 이었고 블락도 수준이 낮았다.
그래도 한번 달리면 잘 달려서 롱 라우트로 재미를 보기도 했고 리버스 작전으로도 몇번 짜릿한 경험을 했다.
22년도엔 그 부분을 보완해서 근력운동을 시작하였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걸 왜 지금까지 안하고 있었나 할테지만 코로나로 인해서 학교 헬스장이 운영을 안했던것, 개인적 학업으로 인해 여유가 많지 않았음을 고려한다면 뭐 어쩔 수가 없었다.
나름 당시엔 너무나 간절해서 19년도 주장을 했던 형님께 근력운동을 어떻게 해야할지 여쭤봤다.
정말 감사하게도 그 형님은 나를 위한 근력운동 프로그램을 짜 주었고,
나는 그것을 매주 빠짐없이 꾸준히 하였다.
처음 시작할때 집 앞에 헬스장에 등록을 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근력운동을 한 날들이었다.
그냥 학교 마치고 오토바이 타고 집 와서 운동가방 들고 나가서 헬스장까지 걷는것부터가 너무 재미있었다 ㅎㅎ
지금 후배들을 보면 중량 욕심이 있는 친구들이 많고 실제로도 그런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나 스스로 ㅈ밥이란걸 잘 인지해서일까 1RM 잴 생각 하지 말고 그냥 무식하게 일단 밀고 당기고만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그래서 처음 내가 어느정도의 근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잘 모른다 ㅋㅋ
아무튼 그렇게 근력을 살짝 획득하고 나서 시즌을 맞이했다.
사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미식축구부라는 팀에 그렇게 애착이 있지 않았다.
몇몇 친구들과 친하긴 했지만, 트러블이 있는 친구도 있었고, 선배들도 잘 알고 있는 편도 아니었고,
집과 거리가 멀어 사실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아니었다.
여름 합숙때 집에서 왔다갔다하며 운동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주장을 하던 동기와 문제가 생겨 잠깐 나갔다가 들어오는 사건도 있었다.
고마운건, 그때 잡아준 동기와 후배들이다. 첫경기에 바로 복귀해서 다시 열심히하기 시작했다.
동국대를 만나서 터치다운 두개를 하며 승리에 기여를 했다.
그러나 시립대를 만나서는 예상치 못하게 패배를 하게 되었다.
이길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상대라 당황하였고, 그 길로 팀은 아쉽게 저조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다.
나는 정말 슬펐다.
비록 내가 잘하는건 아니지만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바뀌지 않는 듯한 상황에 무력과 좌절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동아리에서도 불화가 발생해 선수들이 대거 이탈하는 참사가 벌어져 이대로 팀이 무너지나 싶었다.
마지막 경기 직후 술자리를 가지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한 방울 흘렀다.
1학년때 서울리그 우승을 하던 그런 강팀에서 더이상 그런 저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팀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제는 나도 고참이 되었으니 선배로서 모범을 보이고 많은 신입을 끌어들여 다시 팀을 살려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 우선 내가 먼저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더더욱 근력운동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쉬지 않았다.
매일 운동을 했다.
연구일정이 늦게 끝나도 30분이라도 시간이 있으며 고민하지 않고 헬스장을 찾았다.
23년도엔 작년의 저조했던 성적에 앞서 암울한 팀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모두가 노력했다.
이례적으로 주장을 1학기와 2학기 따로 뽑아 주장단이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하였다.
1학기에 최대한 리쿠르팅을 열심히 한 다음, 2학기 시즌을 준비한다는 계획이었다.
나는 1학년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나 또한 리쿠르팅에 누구보다 신경써서 열심히 참여하였다.
혼자 동아리 박람회 부스를 지키고 있기도 하였고 후배들 밥 사주러 지갑도 많이 열었다.
간절함이 앞선것일까 지갑을 연 것에 비해 결과는 아쉬웠다.
그래도 합숙을 하고 시즌을 준비하며 열심히 경기를 준비했다.
시즌 도중 악재가 일어났다.
서울대전을 앞두고 워크스루를 하던 중 후배에게 무릎으로 허벅지를 찍혀
대퇴가 파열되었다.
나는 그 부상으로 경기에 뛸 수 없는건 물론 걷는것조차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다.
경기 전날 부상을 당하고 상태가 매우 심각해 어디 가지도 못하며 다음날 경기가 끝나고 부원들이 돌아올 때까지 부실에 누워있었다.
우리 팀은 나빴다고 생각한 작년보다 더 안좋은 성적을 받게 되었다.
19년도 서울 1위의 강팀에서 이젠 1부 리그 강등을 목전에 놓고있는 약팀이 되어버린 것이다.
직접 뛰지 않아 체감이 안된건가 작년만큼 슬프진 않았다.
그래도 강등전을 해야하고 이 경기에서도 지면 진짜 끝장이다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정신이 확 뜨였다.
마침 다리가 거의 나은 상황이라 강등전엔 뛸 수 있었다.
상대는 고대였고, 강등전이 연고전이 되어버린 웃픈 상황이었다.
나는 터치다운 두개를 하며 강등만은 막아냈다.
이로써 내 대학미식축구 선수 생활은 막을 내린다.
용두사미로 끝이 났다.
씁쓸했다.
결과가 어떨지라도 그동안 나는 최선을 다했다.
누구는 그 노력이 빛을 발할 수도 있고, 누구는 안타깝지만 그 노력이 묻힐 수 있다.
전자는 모두가 알아주며 관심을 받고 명예를 얻지만
후자는 성공하기 전까진 아무도 관심 주지 않는 고독한 상황에서 혼자 싸우는 고난만 있을 뿐이다.
그나마 나은게 있다면 리쿠르팅을 열심히 한 덕에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훌륭한 자원을 키웠다는 것이다.
후배들 밥사주고 같이 캐치볼하고 놀면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나는 앞으로도 리쿠르팅에 힘을 써 우리 팀이 잘할 수 있도록 묵묵히 뒤에서 도와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