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대운하

안데스초콜릿 2025. 10. 29. 04:57

나라가 발전하려면 물자의 수송이 원활해야한다.

현대에는 철도나 고속도로, 항공이 있지만

산업혁명 이전의 기술력으로 대규모 물자 수송을 위해서는 배가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었다.

 

특히 중국의 경우 강남의 풍부한 물자를 어떻게 운송하느냐가 국가 경제의 핵심이었을 것이다.

 

대운하는 춘추전국시대 기원전 486년 오나라 부차가 장강과 회수를 잇는 한거우 운하를 판게 시작이라고 한다.

이후 수 문제가 대운하를 계획하고 양제가 남중국과 북중국을 잇는 대운하를 완성시킨다.

무리한 건설로 수나라는 얼마 안가 멸망하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개보수되며 현대에도 쓰이는 중국의 핵심 교통 체계이다.

 

수 양제가 건설한 대운하는 단순히 장강/회수/황하를 연결한 정도였다.

강물을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이 없어 운하를 비스듬하게 팠고, 길이도 2700km로 매우 길었다.

강물의 흐름도 무시할 수 없어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또한 삼문협 이라는 지형으로 인해 낙양에서 장안까지 운송하는것도 큰 문제가 있었다.

 

수 양제의 대운하는 이후 금나라가 북송을 몰아내며 송 조정이 강남으로 피신할때 대운하를 파괴하면서 끊기게 된다.

이후 원나라때 북경으로 식량 수송을 위해 대운하를 다시 착공하였고 명 영락제가 보수, 증설하며 오늘날의 대운하가 완성된다.

 

19세기 황하의 물줄기가 바뀌며 태산 이북으로 흐르면서 문제가 생겼다가 2022년 복원이 완료되며 다시 활용되고 있다. 다만 황하 이북 일부 구간의 폭이 좁아져 고대와 같은 경항 수송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대운하의 건설로 명청시대 북경이 수도로써 유지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년 막대한 양의 곡물을 수송하며 화북지역 대규모 군대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운하로 인해 바다의 필요성이 사라진 명이 해금정책을 펼치며 유럽보다도 이른 국제 해상 무역(정화 함대)에도 불구하고 국제화에 실패한것을 보면 편리함이 꼭 좋은것인가 생각이 들게 만들기도 한다.

 

 

 

대운하의 건설로 대운하와 장강의 교차지점인 양저우가 발달하였으며

쌀의 수송 거점이었던 쑤저우 또한 함께 발달했다.

양주, 소주를 합쳐 물의 도시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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